투사회보, 진실을 말하다
박용준 열사
故 박용준 열사가 필경하여 등사한 「투사회보」
투사회보는 1980년 5월, 5·18민주화운동 당시 삼엄한 언론통제 상황에서 왜곡하고 침묵하는 언론을 대신해 광주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린 소식지이자 대안언론이었다. 투사회보 제작은 당시 노동야학이던 들불야학의 강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문안작성 조, 필경·등사 조, 배포 조 등 역할 분담으로 이뤄졌고 16절 갱지의 양면에 등사되어 1980년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총10호가 제작되었다. 제10호는 아쉽게도 배포되지 못하였고 계엄군에 의해 전량 수거 폐기되었다고 알려졌다. 당시 피해상황, 집회 일시, 시민 행동강령 등의 내용이 게재되었던 투사회보는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소식지였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인 광주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매개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박용준, 시대의 어둠을 온몸으로 맞서다
당시 광주 YWCA 신협의 간사였던 박용준은 부단한 학구열로 진리와 정의를 탐구하며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1980년 5월, 5·18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들불야학의 특별강학이던 박용준은 들불야학의 다른 강학 및 학생들과 함께 「투사회보」제작에 관여한다. 박용준이 투사회보의 필경작업을 맡은 것은 그의 헌신성과 함께 그가 글씨를 잘 썼기 때문이다. 박용준은 투사회보 제작이야말로 총을 드는 것에 못지않게 값진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 YWCA에서 최후까지 광주를 지키다가 의로운 죽음을 당했다.
삶
1956년 7월 9일 출생
1956년 7월 15일 광주영신원 입소
1964년 4월 28일 무등고아원(현 무등육아원) 입소
1968년 2월 서석초등학교 졸업
1968년 3월 숭일중학교 입학
1972년 3월 숭의실업고등학교(현 숭의고등학교) 야간부 입학
1973년 11월 14일 광주YWCA신용협동조합 교도직 입사
1975년 1월 광주숭의실업고등학교 졸업
1978년 7월 들불야학의 특별강학으로 활동, 김영철과 함께 광천(삼화)신용협동조합을 인수하여 지역사회개발사업을 계획함
1980년 5월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사회보’의 필경을 담당함
1980년 5월 27일 광주YWCA 2층 창가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산화(당시 25세)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 안장(묘지번호 2-38)
자료:5.18문화재단. 편집:빛고을신문